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르빈 롬멜/평가 (문단 편집) == 종합적인 평가 == 어쨌든 그의 번뜩이는 군사적 직관이나 부하 장병들을 다루는 면모, 일정 범위 내로 제한된 야전에서의 상황 장악 능력 등을 보면 롬멜이 '''훌륭한 전술 지휘관'''이었다는 점은 변함없을 것이다. 즉, 1개 전선을 담당하는 최고 지휘관이 아닌 야전 지휘관으로서는 사실상 최고 수준이며 그를 휘어잡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쉽이 존재한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프랑스 전역에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기동으로 맹활약할 수있던 것도 주변 부대와의 갈등을 통제해준 사령부 덕분이었다. 만약 롬멜이 북아프리카 전역이 끝난 후에 서부전선 집단군 사령관이 아닌 동부전선으로 가 '''야전군 급 전략예비대의 지휘관'''으로 부임했다면, 이런 롬멜의 역량에 대한 비판이 상당수 줄어들 수도 있었다. 위의 전술 지휘관 내용에 덧붙여서, 롬멜이 전선을 확장시킨 이유는 명성 확보도 있었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지중해를 거쳐 오는 독일의 보급선들은 커닝엄이 이끄는 영국 지중해 함대에게 속수무책으로 깨지고 있었고, 추가로 물자를 보충해도 이미 동부전선이 개막해 동부전선에 줄 물자도 부족해진 독일이었기에 케셀링은 전략적 가치가 유럽보다 적은 북아프리카에서 많은 물자들을 소모하는 롬멜의 추가 물자지원을 빈번히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케셀링은 크레타와 몰타 섬을 점령하여 영국 지중해 함대의 활동 범위를 좁히고 싶어했다. 분명히 현재시점에서 결과만 보면 북아프리카 전선은 보급문제로 한계에 봉착해서 탄약과 연료문제로 많은 차량과 인력이 낭비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독일군이 리비아에만 남아있다고 해서 보급문제나 궁극적으로 전쟁의 해결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북아프리카에는 많은 이탈리아군이 있었고 이들을 활용하는 것은 독일군 입장에서 분명히 필요한 일이었다. 이탈리아군이 영국군에게 밀려 리비아를 빼앗기고 나면 바다 건너 유럽으로 상륙해 들어올 거라는 건 당시에도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즉, 북아프리카가 날아가면 에티오피아 점령에 막대한 인력을 갈아넣고 선전하며 신화하한 무솔리니의 정치적 위상이 무너질 것이니 이탈리아는 결사적인 방어를 하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쉽게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사실 롬멜은 북아프리카에 막 왔을 때까지만 해도 무리하게 전선을 확대할 생각이 없었다.[* 롬멜의 성향과는 별개로 어쩔 수가 없었던 게 북아프리카의 독일군은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군도 물론 있었지만 독일 아프리카 군단이 리비아에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왜 왔는지]]를 생각하면 롬멜 입장에서 이탈리아군은 그닥 신뢰가 가는 집단이 아니었다.] 하지만 싸워보니 생각보다 영국군이 무능하고 이탈리아군이 쓸만하니 수에즈 운하를 틀어막을 수만 있다면 중동권에는 친독정서가 팽배한 국가들 투성이였던지라 지중해를 추축군의 내해로 만들 수 있으니 충분히 노려볼 만한 수 였다. 그리고 수에즈 운하를 틀어막으면 영국과 영국의 지속지원을 수행하는 거대한 아시아 식민지들의 연결로를 틀어막는 셈이니, 전후에 만슈타인을 비롯해 수에즈 운하 한타를 노려 영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를 한 인물들도 많았다. 이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70% 정도 성공하기도 했다. 히틀러가 그저 망상으로 롬멜을 밀어준 것이 아니라는 뜻. 현대 시점에서 봐서 애초에 전략적 상황에서 추축군은 지는게 예정된 싸움을 하고 있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기전에 전황을 확실히 뒤엎는 기적이 필요했는데 롬멜의 군단은 그 기적을 써내려가는 시도를 하다가 이런저런 제반사항의 불리함으로 인해 실패한 것이지 의미없는 시도를 한 것이 아니었다. 못 이길 전선을 애초에 열지 말았어야했다는 비판을 달리보면 독일군 전체 사단 수의 네배가 넘는 수를 보유한 영미동맹국들을 상대로 히틀러가 폴란드 국경을 넘으라는 명령에 따른 순간 모든 독일군이 실패했다는 결과론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그랬기 때문에 독일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선 소모전으로 고착되지않는 도박적이고 빠른 전격전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롬멜은 전선을 넓히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애초에 알고있었음에도 그 물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카이로에 입성하여 카이로에 쌓인 영국군 물자를 탈취하고, 유전지대인 중동으로 가는 길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히틀러의 계획대로 중동에서 독일 남부집단군과 접선하여 지중해 함대를 격리해 격멸하고 중동의 패권을 가져가려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일은 전쟁 기간동안 중동의 이라크, 이란과 터키를 추축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라크는 독일쪽으로 기울자 영국과 소련이 선제 공격했으며 터키는 독일군의 물자가 흑해로 들어갈수 있도록 협조는 했지만 중립을 그대로 유지했다. 거기에 롬멜의 기대만큼 독일의 기갑 병력들의 우위가 오래 유지되지 못했으며 졸전을 거듭하던 영국군도 지면서 경험을 쌓아 클로드 오킨렉과 버나드 몽고메리가 풍부한 보급이라는 강점을 활용해 강력한 방어선을 형성, 소모전을 강요하며 충분히 교환비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롬멜뿐만 아니라 독소전쟁의 스탈린그라드 전투도 독일군이 고전한 이유가 소련군이 요새화한 도시나 방어선에 틀어박혀 소모전으로 이끌면서였다.] 그리고 영국 항공기와 같은 지원 전력에 갈아먹혀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제 1차 엘 엘라마인 전투에선 약 2배 넘는 차이를 보인 연합국 전차에도 승리했다는 점에선 전장 통솔력은 가히 뛰어났다. 이러한 점에서 롬멜은 전선 내의 전장에선 누구보다 빠른 판단력과 통솔력을 보였지만, 전선을 총괄하고 물자를 담당하는 점에선 미숙한 점을 보였기에 전술 지휘관으로서 적합하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정리하자면, 명령을 받고 주어진 상황에서 전투를 치르는 건 최고였으나 야전군~집단군 단위의 전역을 담당하는 것에 대해 역량이 부족한 인물이, 집단군 사령관[* 실제 병력 규모는 분견군 정도였다.]의 지위에 있으면서 자신의 이러한 단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패전의 책임을 사이가 나쁜 다른 장성들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이 비판을 받아온 것. 또한 자신의 작전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각자의 업무에서, '''롬멜 자신이 생각하는 본인의 전술적 역량'''에 걸맞는 수준이기를 항상 요구하였다. 일견 타당할 요구로 보이겠지만 모든 인재를 맘에 쏙 드는 천재로 채울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하면 최상위 지휘관에 걸맞지 않는 판단이다. [[손자병법]]에도 유능한 장수는 현명한 자 뿐 아니라 어리석은 자와 게으른 자도 잘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써 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이런 수준의 참모부, 지휘서열을 갖춘 장군은 한 명도 없었다. 가령 롬멜의 이상에 한없이 가까운 여건에 있었던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본인에게 그럴 만한 역량과 해군본부 인사참모 경험이 있고, [[어니스트 킹]] 제독으로부터 무제한의 인사권까지 보장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선을 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고, 겉으로 자신이 총애하는지 여부에 대해 티를 내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정작 '''유능한 지휘관들이 롬멜의 막하에만 오면 제대로 된 실력 발휘를 못한다'''는 점에서 '''자신이 요구하는 실력 이상의 장성들을 자신의 고집 때문에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점'''은 지휘력의 부재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한스 위르겐 폰 아르님|한스-위르겐 폰 아르님]] 장군의 경우 그 동안 영미권 서적과 위키에서 '프로이센 귀족의 오만함으로 롬멜에 비협조적이어서 아프리카 군단의 패배를 초래했다.'는 식으로 악역을 떠맡아 왔지만, 동부전선에서 그는 소련군 최고의 명장 [[게오르기 주코프]]와 [[이반 코네프]]를 정면으로 맞붙어서 대승리를 거둔 화성작전의 주역이었으며, 당시 서부전선에서 롬멜의 휘하에 있었던 [[요하네스 블라스코비츠]] 상급대장 역시 역전의 명장이었다. 하지만 군대라는 조직 내에는 여러 성향을 가진 장교들이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고 그들이 그에 걸맞는 역량을 발휘하게 해주는 것도 상급 지휘관의 역할이자 능력인데 [[빌헬름 리터 폰 토마]], 가이어 폰 슈베펜부르크와의 대립도 그렇고 롬멜은 이런 면에서는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본인은 임무형지휘체계에서 제일 빛날수 있는 인물이지만 휘하 장교들이 자신의 능력을 뽐낼 수 있게 해주는 임무형 지휘체계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발터 모델처럼 통제형 지휘전술을 선호하면서도 통제형 지휘전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어 야전군을 지휘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인물'''로 정리할 수 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에르빈 롬멜, version=64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